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반 코네프 (문단 편집) === 종전 이후 === 종전 후 코네프는 잠시 [[중앙군집단]]사령관 겸 [[오스트리아]] 지역 연합군 고등판무관을 지내다가 주코프의 후임으로 소련 지상군총사령관 겸 제1국방차관이 된다.[* 당시 주코프가 숙청당할 위기에서 그를 제일 먼저 변호한 것이 다름아닌 코네프였다고 한다. 정확히는 주코프를 실컷 욕한 뒤, 그를 변호하는 모습을 보여줬다고 한다.] 그러나 종전 후 명성을 얻은 여러 장성들을 쫓아내던 스탈린에 의해 얼마 뒤 카르파티아 군관구 사령관으로 좌천되었다. 하지만 당중앙위원회에서도 쫓겨난 주코프와 달리 당중앙위원회에 남을 순 있었다. 1952년 10월, 19차 당대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승진하여 이후 죽을 때까지 당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재직하였다. 스탈린 사후 권력 투쟁 과정에서 [[라브렌티 베리야]]를 숙청하는데 협조하면서 복권되었고,[* 베리야는 스탈린 사후 재빨리 개혁적 성향을 가졌던 과두정에 편승했으나, [[동독]]을 [[서독]]과 통일시키자는 등의 너무 막나간 주장을 한데다, 스탈린 시절 한 짓들로 인해 대중과 당, 군부 모두에게 찍혀 있었다. 오죽하면 철천지 원수 관계였던 주코프와 코네프가 베리야 제거에는 합심을 했다.] 잠시 지상군 총사령관으로 복직했다가 초대 [[바르샤바 조약 기구]] 가맹국 합동군 총사령관에 임명된다. 합동군 총사령관을 지내던 때, 코네프는 [[헝가리 혁명]] 진압을 지휘했다. 1960년 군직에서 물러나 국방부 총감찰단[* 소련군에는 정년이 없기에 은퇴나 예비역 전환을 원하지 않는 고위 장성들이 총감찰단으로 이동한다.]으로 이동했던 코네프는 1년 뒤에 [[서부군집단|독일 주둔 소련군집단]] 사령관으로 복귀했고, [[베를린 장벽]] 건설을 지휘했다. 1962년 다시 국방부 총감찰단으로 이동한 코네프는 군 생활을 마무리하게 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